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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의 유입과 전개
서구식 근대건축의 유입경로
외국공관 계통의 건축
외국인 선교사를 통한 종교관련 건축물
외국인 상사건물 및 주택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한 관청 및 공공건물
한국 근대건축의 시대구분
구한말의 근대건축 (1910년 이전)
일제시대의 근대건축 (1910~45년)
해방이후의 근대건축 (1945년 이후)
구한말의 근대건축
개관
1910년 이전의 시기로 한국 전통건축양식으로부터 근대건축으로의 과도기
강압에 의한 개국으로 일본과 서구의 외교시설, 상업시설 등이 다수 건설됨
1900년 전후 선교계통의 종교, 의료시설이 다수 건설됨
종교건축은 고딕양식을, 공관건물은 르네상스양식을 각각 모방
종교건축물
약현성당
서울 중림동, 1892년
3랑식 고딕양식의 성당
명동성당
서울 명동, 1892~98년
한국 유일의 순수한 고딕양식 건축물,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벽돌교회당
정동교회
서울 정동, 1895~98년
단순화된 고딕양식의 건축물
천주교 원효로 성당
서울 원효로, 1907년
붉은 벽돌의 고딕양식 건축물로서 현 성심 여중고 예배당
외국공관
영국 공사관
서울, 1891년
벽돌조 2층의 죠오지안 양식 건축물
러시아 공사관
서울, 1892년
벽돌조 2층의 제정 러시아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
프랑스 공사관
서울, 1896년
벽돌조 프랑스 바로크 양식 건축물
상업건축물
인천 일본제일은행 지점
인천, 1897~99년
후기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로서 현 조달청 인천 사무소
부산 세관
부산, 1910년
벽돌조 2층의 영국풍 르네상스 건축물로서 현 부산 세관 건물
의료시설
세브린스 병원
서울, 1904년
벽돌조, 2층의 영국 르네상스 건축물
대한의원 본관
서울, 1907~08년
기타
독립문
서울, 1896~97년
순수한 석조양식 건축물로서는 최초
서북학회 회관
서울, 1908년
벽돌조 2층 건물
덕수궁 석조전
서울, 1900~10년
고대 그리이스의 이오니아 주범양식의 석조건물
일제시대의 근대 건축
개관
한일합방(1910년)이후로부터 해방(1945년)까지의 건축
한일합방 후 조선총독부 주관하에 관청, 학교, 은행 등을 건설
초기에는 르네상스 양식, 후기에는 절충주의 양식의 건물을 다수 건설
박동진, 박길룡 등의 한국 근대건축의 선구적 건축가들이 활동
한국인 건축가들에 의한 건축물
보성전문학교 본관 및 도서관
서울,1933~37년
박동진 설계의 고딕양식 건물로서 현 고려대학교 본관
화신백화점
서울, 1937년
박길룡 설계의 근대 합리주의적 경향의 건축물
경성제대 본관
서울 동숭동, 1931년
박길룡 설계의 건물로 현 문예진흥원 청사
공공건축물
경성역사
서울, 1922~25년
건물의 중앙에 대형 돔을 가설한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로서 현 서울역
조선 총독부 청사
서울, 1916~26년
돔을 가설한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
경성부청
서울, 1925~26년
현 서울시청으로 철근콘크리트조의 절충주의 양식 건축물
상업건축물
조선은행
서울, 1908~12년
현 한국은행 본점으로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
제일은행 본점
서울, 1935년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삼월 백화점
서울, 1930년
현 신세계 백화점
기타 건축물
서울 성공회 성당
서울, 1922~26년
우리나라 유일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
경성 부민관
서울, 1935년
근대 합리주의 계열의 절충주의 양식으로서 현 서울시의회 청사
해방이후의 근대건축
개관
해방이후 한국건축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
1950년 이후 합리주의적 경향의 국제 양식 건축이 성행
김중업의 작품
명보극장, 서울, 1957년
프랑스 대사관, 서울, 1960년
서강대학교 본관, 서울, 1960년
제주대학 본관, 제주, 1964년
서산부인과, 서울, 1965년
삼일빌딩, 서울, 1969년
김수근의 작품
자유센터, 서울, 1964년
세운상가, 서울, 1967년
국립 부여 박물관, 부여, 1970년
기타 건축가와 작품
박동진, 영락교회,석조건물, 서울, 1950년
이천승, 국제극장, 서울, 1957년
이희태, 절두산 복자기념성당, 서울, 1967년
※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은 1879년에 준공된 부산의 일본관리청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일본 영사관인 왜관의 관수(館守)집을 헐어 지은 것으로 양식과 일본식의 절충식 건물이었다고 한다.
1880년대에 지은 양옥으로 인사동에 있던 철종의 부마 박영효의 집터에 지었던 일본공사관을 들 수 있는데,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성난 군중이 몰려가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1880년대 양옥인 인천 대불(大佛)호텔은 1980년까지 장수했다. 개화기에 인천을 통해 들어온 외국인사들이 유숙했던 한국 근대화의 요람이었다. 헐리기까지 중화루라는 중국음식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보존되었다면 한국 개화의 1등사적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890년대의 양식건물로는 영국대사관, 서울 중림동의 약현성당, 독립문, 서울 명동성당, 정동교회가 남아있을 뿐이다. 19세기의 양식건축은 도합 26개였는데 겨우 100년도 지탱 못하고 다섯손가락으로 헤아릴 만큼만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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